군사시설로 막혀버린 충청의 정기

2006년 3월 28일 | 자연생태계

군사시설로 막혀버린 충청의 정기

2. 금남정맥 계룡산 구간

<정리:김준호 대전일보기자, 도움말:이상희 간사,정기영 간사, 탐사기간:3월15일~17일>

“대한민국의 중심이자 금남정맥의 진산(鎭山)인 계룡산이 ‘제 2의 천성산’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금남정맥의 주요구간인 계룡산이 최근 호남고속철과 계룡대 골프장 건설 등으로 인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도로공사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된 가리울 계곡▲

지난 1968년 한려수도와 더불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산은 충남 논산시와 공주시, 대전시에 걸친 관음봉, 쌀개봉, 천황봉 등 20여개의 봉우리가 마치 닭 벼슬을 쓴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부터 계룡산은 백두산과 더불어 민족의 영산으로 수 많은 무속인들이 몰려들었다. 신도안은 조선조 말 혼돈스러운 정세 속에 수백 개의 신흥종교가 속속 창시된 한국 근대적 샤머니즘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관음봉, 쌀개봉,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계룡산의 주능선은 마치 성을 쌓은 모습을 닮았다 해서 ‘자연성(城)능’이라 불린다. 가지런히 늘어선 돌과 돌 사이를 밟으며 능선을 바라보니 날이 선 암벽들이 도드라진다. 그 한가운데 계룡산 최고봉 (845m)인 천왕봉이 늠름한 자태를 드러낸다.
하지만 천왕봉 위에 설치되어 있는 중계탑들과 군사시설들이 전경을 가려 씁쓸할 따름이다.
천왕봉은 1948년 이후 군사시설과 중계시설이 설치되면서 수십년 동안 각종 폐기물과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지난 2003년 8월 충남도에서 천왕봉 복원 공사를 실시, 그런대로 복원이 이뤄졌다. 그러나 임시방편적으로 실시된 복원 탓으로 곳곳에 흙과 돌들이 유실되거나 흘러내리고 있다. 해발 800m가 넘는 산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부실하게 복원사업을 실시한 결과다. 천황봉 일대의 천단 위는 시뻘건 황토 흙으로 덮여있는 데다, 천왕봉 위에는 각종 군사 및 통신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복원’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 전국의 유명 산의 정상에 들어선 군사 시설의 대부분은 민간 출입이 대폭 완화됐다. 복원작업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현재 출입을 통제하는 곳은 민통선 주변의 향로봉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사봉 서쪽은 예부터 풍수지리상으로 이상적인 지형이라 해서 ‘신도안’이라 불리며 수 많은 무속인들이 찾던 곳.
지난 1983년 5공화국 시절 이른바 ‘6·20 사업’이 추진되면서 육군본부가 이곳으로 이전했고, 93년 해군본부가 옮겨오면서 3군 통합 기지인 ‘계룡대’가 세워졌다. 인근에 각종 군인들을 위한 휴양시설이 들어섰다.
‘군인 체력단련실’이라 불리는 계룡대C.C(골프장)도 계룡산 국립공원 남쪽에 위치해 있다. 군은 2007년 군수사령부 대전 이전으로 인한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코스를 9홀에서 18홀로 늘릴 계획이다.
이미 이곳 석목리 두계천 상류에 있는 구룡코스 일대는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발견돼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지역에는 골프장이 건설되는 것이 불가능한 데도 육군본부는 골프장 건설을 추진할 예정이다.
군사시설보호지역인 계룡산 국립공원 엄사리 방면의 등산로는 나무뿌리가 노출되는 등 침식이 심각한 상태다. 이곳은 군사시설 보호지역이라는 이유로 누구도 훼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제대로 된 복원 관리가 이뤄질 리 만무한 것이다.
이상희 금남정맥탐사대장은 “등산인들이 정식 등산로가 아닌 이곳저곳으로 출입하면서 계룡산국립공원 곳곳에 마구잡이로 등산로가 생기고 있다”며 “계룡산이 야생동물보다 사람이 많이 찾는 공원이 돼가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개발지상주의도 문제가 많다.
최근 충남도가 호남고속철도의 계룡산 터널 통과를 반대하고 있지만 과거 장군봉 자연사박물관 사업 허가를 내준 바 있다. 대전시도 최근 유성C.C의 야간 조명시설을 허가해줬고,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국도 1호선 신설공사에 이어 계룡산 입구인 박정자 삼거리의 입체교차로 건설을 추진중이다. 계룡산의 줄기 곳곳이 개발로 인해 파헤쳐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강 이남의 중요 생태축인 계룡산이 각종 도로와 골프장 건설, 고속철도로 인해 섬처럼 단절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양흥모 생태도시국장은 “금남정맥의 산줄기가 곳곳에서 끊어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금남정맥은 금강이남 생태계의 핵심인 만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역민들의 관심과 이해와 참여로 보전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