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곳곳 균열… 발파 땐 지진 난 것 같아"

2005년 1월 31일 | 자연생태계

“주택 곳곳 균열… 발파 땐 지진 난 것 같아”

윤성효 기자(오마이뉴스 기자)


▲지은지 3년된 공기순씨 집으로, 1층 신발장 앞 문틈이 벌어져 시멘트 조각이 떨어져 나갔으며,
2층 유리창에 금이가 있었다.



▲ 공기순씨 집 대문 문턱에 떨어져 있는 시멘트 조각.


“동네 주민 여러분, 지금 발파작업이 있을 예정이니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 꽝-.”
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가 한창인 경남 양산시 동면 개곡마을에는 연일 발파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주민들은 공사 현장에서 수시로 들려오는 ‘꽝-‘하는 소리에 연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주민들은 특히 발파 공사 때문에 주택에 균열이 났다면서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꼭 지진이 나는 거 같다니깐요. 땅 전체가 진동하는데 집도 같이 흔들리는 겁니다. 불안해요. 아직 터널 본공사는 들어가지 않아도 이 정도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지난 28일 이 곳을 찾은 기자에게 한 주민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토로한 말이다.
70여세대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은 2004년 봄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100일 동안 공사 현장에서 농성을 벌였던 곳이다. 당시 지율 스님은 포크레인 위에 올라가면서 몸으로 공사를 막았고, 그 때문에 유치장에 수감되기까지 했다.
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는 양산 쪽(현대건설)과 울주 쪽(SK건설)에서 각각 진행되고 있다. SK건설이 맡은 구간은 인근에 마을이 없지만, 현대건설이 맡은 구간은 바로 개곡마을 뒷편이다.
터널공사는 지난해 9월부터 11월말까지 중단됐다가 ‘도롱뇽소송’ 항고심에서 기각 결정이 내려지자 공사가 재개됐다. 현대건설은 공사 재개에 앞서 환경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시공을 다짐하는 결의대회까지 갖기도 했고 지난 1월 중순부터 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를 위한 발파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100일 가까이 물과 차만 마시는 단식을 하고 있는 지율 스님은 단식해제 조건으로 ‘토목공사는 진행하되 발파공사는 3개월간 보류하고 그동안 환경영향평가를 공동으로 할 것’을 제안했지만, 정부측에 의해 거부당한 상태다. 환경단체는 천성산 터널공사의 발파작업으로 인해 생태계 파괴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주민들 “집 곳곳에 균열” 호소

▲ 허영자씨 집 목욕탕에는 타일이 떨어져 나가고 깨져 있었다(맨왼쪽).
공기순씨 집 2층 방에는 벽지가 찢어져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8일 오후 2시30분경 개곡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는 ‘우리 다함께 21세기 철도 르네상스 열어갑시다’는 펼침막이 내걸렸고, 황토빛을 드러낸 마을 뒷산의 터널 진입도로에는 덤프트럭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을 어귀를 지나 수령 300년된 소나무 근처에서 만난 한 주민에게 다가갔더니 대뜸 터널 발파 공사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우리 집은 그래도 밑에 있어 조금 나은데, 위쪽에는 목욕탕에 금이 갔다는 소리도 들리데요.”
기자는 이 말을 듣고 마을회관 옆에 위치한 공기순(60)씨 집에 들어섰다.
지은 지 3년째 됐다는 공씨 집의 대문 문턱 위에는 떨어져나간 시멘트 조각이 있었다. 대문 틈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시멘트 조각이 떨어져 나온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갔더니 유리창에 금이 가 있었고, 벽지가 찢어져 있었다. 1층 신발장 앞 작은 문도 틈이 벌어지면서 시멘트 조각이 떨어져나가 있었다.
공씨는 “며칠 전만해도 이런 게 없었는데…”라며 다음과 같이 걱정했다.
“집 전체가 흔들거려요. 며칠 전부터 ‘쿵’ 하는 소리가 나는데 불안해요. 지진난 거 같다니까요. 며칠 병원에 있다가 왔는데 집 곳곳에 균열이 생겼어요.”
몇 집 건너에 위치한 허영자(52)씨 집도 마찬가지였다. 허씨 집은 1층 목욕탕 타일에 금이 가 있었다. 허씨는 “며칠 전 화장실에 있는 데 ‘쫙’ 하는 소리가 나서 살펴보았더니 타일에 금이 갔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앞 공터에 모여 술을 먹고 있는 노인들도 발파작업에 대한 우려를 토로했다. ‘기자’라고 소개하자 한 노인은 “안 그래도 우리가 지금 그거 걱정하고 있었어요”라면서 앞다투어 말을 하려고 나섰다. 그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손태수(78)씨는 “집이 들썩들썩 한다 아니가, 집에 못 누워 있겠다니까”라고 말했다. 또 다른 노인은 “아직 터널 본공사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책을 세워야지”라고 말했다.
한 노인은 ‘지율 스님의 오랜 단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참 딱한 일이지”라며 “스님 생각하면 공사도 당장 그만 두어야 하는데, 국가에서 하는 일인데 우짜겠능교”라고 힘없이 말했다.
현대건설 “발파작업이 원인이면 보상”

▲ 현대건설 발파작업 점검팀이 탐지기를 설치한 뒤 진동을 살피고 있다.


노인들과 이야기를 마칠 즈음 서너명의 사람들이 마을 안쪽으로 걸어가는 게 목격됐다. 현대건설과 하청업체에서 나온 발파작업 점검팀이었다. 이들은 산에 가까이 있는 집 마당에 탐지기처럼 보이는 장비를 설치했다. 탐지기 설치를 마친 뒤 이들 중 한 사람은 마이크를 들고 수첩에 적힌 말을 읽었다.
“동네 주민 여러분, 지금 발파작업이 있을 예정이니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이어 두 차례 방송이 나간 뒤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탐지기의 수치를 체크한 점검팀의 한 관계자는 “기준치 이하네”라고 말했다.
기자가 현대건설 소속 점검팀 관계자에게 다가가 ‘주택 균열이 발파작업 때문인가’라고 묻자 그는 “우리는 공식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면서 인터뷰를 거절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아직 터널 본공사에 들어간 게 아니며 오는 4월경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금 발파작업은 입구에 있는 암벽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택이 오래되어 자연적으로 균열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만약에 발파작업이 원인이라면 주민들에게 보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관련 개곡마을 김철호 이장은 “며칠 전 현대건설과 공동으로 주택 상태를 살피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하고있다”면서 ‘주택 균열에 대한 원인은 무엇이고 대책은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모른다”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천성산대책위 관계자는 “아직 터널 본공사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주택균열이 발생하고 땅 전체가 흔들려 주민들이 불안해 할 정도라면 앞으로 터널공사 때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 개곡마을 전경. 마을 뒷산으로 고속철도 터널이 지나갈 예정이다.

지율스님-환경단체 우려가 현실로?
“본공사 진행되면 더 심한 균열 생길 수도”

▲ 개곡마을 표지석 너머로 보이는 도로가 터널공사장에 들락거리는 덤프트럭이 이용하는 도로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1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터널공사 현장의 인근에 위치한 개곡마을 주민들은 최근 시작된 발파 작업으로 인해 주택에 균열이 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로 인해 천성산의 생태계 파괴가 불보듯하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터널 입구 산 표면에 있는 암벽을 제거하기 위해 지난 1월 중순부터 발파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발파작업으로 인한 진동은 기준치 이하이며, 아직 터널 본공사가 진행되지 않았기에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천성산대책위측은 “터널 본공사도 아닌 산 입구 암벽 제거 작업에, 그것도 기준치 이하의 진동인데도 주택 균열이 발생할 정도라면 앞으로 본공사가 진행되면 더 강도 높은 발파작업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더 심한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2개 계곡과 22개 고층늪이 있는 천성산을 관통하는 고속철도 터널(원효터널)의 길이는 13km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들은 터널(공사)로 인해 천성산의 자연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이 문제는 ‘도롱뇽소송'(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착공금지가처분신청) 때도 가장 큰 논란거리였다.
우선 환경단체는 터널(공사)로 인해 지하수가 유출되면서 계곡과 늪의 물이 마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고속철도시설공단측은 천성산의 지질은 서로 다른 구조를 갖고 화엄늪 등 일부 고층늪과는 거리가 멀어 터널(공사)로 인한 영향을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와관련 도롱뇽소송 항고심 재판부는 지난 해 11월 29일 기각(각하)을 결정하면서 다음과 지적하기도 했다.
“시공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지질상태를 만날 개연성도 있어 자체 기술의 한계와 시공상 실수의 발생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신청인들의 주장과 같이 터널 자체의 붕괴가능성과 지하수 유출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발생개연성에 대한 소명이 현저히 부족하다.”
100일 가까이 단식을 하고 있는 지율 스님은 단식 해제 조건으로 ‘토목공사는 진행하되 발파공사는 3개월간 보류할 것’과 ‘3개월간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를 할 것’을 제안해 놓고 있다. 지율 스님은 발파작업을 할 경우 주택균열보다 더 심한 천성산의 지질 구조에 이상이 생긴다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