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둥지를 무참히 찢고 어린이 교육을 말할 수 있는가
선화초등학교 백로 번식지 벌목 사태에 대한 우리의 입장
○ 지난 6월 19일, 대전 선화초등학교 교정 내에 있던 백로 번식지가 대규모 벌목으로 사라졌다. 이곳은 수년 전부터 약 50쌍, 100개체가 넘는 백로류가 매년 찾아와 번식하던 공간이었다. 높이 솟은 침엽수 위에 둥지를 틀고, 한 그루에 수 개의 둥지가 형성되던 그 풍경은 단지 생태의 장면을 넘어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귀중한 사례였다.
○그러나 이번 공사로 백로 둥지들은 모두 파괴되었고, 약 115개체의 어린 새끼들은 둥지를 잃고 땅으로 추락해, 보호시설로 긴급 이동되었다. 대전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가 이들 일부를 보호 중이지만, 이들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 무엇보다 문제는, 이번 벌목이 백로의 번식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진행되었고, 공사의 시기를 조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우리는 이 사태를 단순한 행정의 실수로 볼 수 없다. 이는 생명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초래한 인재이며, 인간 중심의 개발 논리가 어떻게 작은 생명들을 밀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다.
○ 선화초등학교는 과거 단체와 협약을 맺고 조류 번식지를 함께 모니터링했던 학교다. 학생들과 함께 번식지 관찰 교육을 진행하며, 공존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던 곳이다. 그렇기에 이번 사태는 더 큰 실망과 안타까움을 안긴다.
○ 한때 ‘자연과 함께하는 학교’였던 그곳에서 이제는 어미 새가 잃어버린 새끼를 찾아 텅 빈 하늘을 맴도는 슬픈 풍경만이 남았다. 생명을 밀어낸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개발인가, 효율인가, 아니면 우리가 잊은 책임인가.
○ 아이들이 매일 오가는 그 교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생명의 존엄을 무시한 선택이야말로, 학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반교육적 행위다. 우리는 이번 사태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벌목에 대한 경과와 책임을 명확히 밝히고, 시민사회와 지역사회에 사과해야 한다.
둘째, 보호 중인 백로 개체에 대한 명확한 보호·방생 계획을 수립하고, 향후 생태계를 고려한 조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셋째, 대전시교육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모든 학교 시설공사에 생물 번식기 보호를 포함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시민환경단체 및 지역사회와의 협의를 통해, 향후 학교의 생태 공간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를 모색해야 한다.
○ 한두 달만 기다렸다면,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그 기다림조차 하지 못한 이번 사태는 단지 나무 몇 그루가 베어진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 우리는 이번 사건이 생명과 공존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책임을 나누고 실천할 수 있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2025년 6월 24일
대전충남녹색연합 대전환경운동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