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연속기고③] 탈석탄의 동상이몽_’공정한 전환’의 성공을 위한 조건

2021년 3월 13일 | 기후위기/에너지

 

2018년 개최된 제24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연대와 공정한 전환에 관한 실레지아 선언(Solidarity and Just Transition Silesia Declaration)’이 채택됐다. 실레지아 선언은 유럽연합의 표현을 빌리면 ‘어떤 지역, 어떤 커뮤니티, 어떤 노동자와 시민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적으로 공정한 포용적 전환’에 관한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전 세계 각국이 탈석탄을 추진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2034년까지 석탄발전소 60기 중 절반을 폐지할 계획이다. 탈석탄은 발전소와 협력업체 노동자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제부터 관건은 ‘어떻게 탈석탄의 부정적 피해를 줄이고 순조로운 전환을 실현할 것인가’이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우리나라가 ‘기후야망’을 높이고 에너지전환을 빠르게 추진할수록 공정한 전환은 더욱 중요하다.

남아공이 공정한 전환 못하는 이유

공정한 전환은 국제노동기구, 유엔기후변화협약 등 국제사회가 채택하며 글로벌 기후논의의 보편적 담론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국가마다 사회적·경제적·역사적 상황이 다른 만큼, 공정한 전환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그 정책을 이행하는 국가의 사회적 토양을 고려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를 보자. 남아공은 전체 전력의 약 90%를 석탄화력발전으로 생산하는 세계 5위의 석탄 수출국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적 탈석탄 추세에 따라 석탄 수요가 감소하면서, 석탄지역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남아공에서 공정한 전환 논의는 활발하지 못하다. 남아공의 탄광업계는 각종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고 정치적으로 권력을 가진 노조들과 부정부패 스캔들에 얽혀 있다. 게다가 남아공의 전체 실업률은 30%(2019년 4분기 기준)에 육박하며 사회보장제도는 취약하다.

이런 사회적 여건에서 석탄업계 노동자의 공정한 전환이 남아공의 정책 우선순위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회적 불신이 만연하고 노동자 권익 및 사회보장 시스템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까닭이다. 설령 공정한 전환을 위한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석탄산업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 범위와 수준을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할 것이다.

퇴출 위기 직면한 독일 석탄화력 발전소 독일 에너지 기업 우니퍼가 한 달 전부터 가동을 시작한 다텔른 4호 석탄화력발전소가 지난 3일(현지시간) 증기를 내뿜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는 석탄화력발전을 오는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법안을 이날 통과시켰다.
▲ 퇴출 위기 직면한 독일 석탄화력 발전소 독일 에너지 기업 우니퍼가 한 달 전부터 가동을 시작한 다텔른 4호 석탄화력발전소가 지난 3일(현지시간) 증기를 내뿜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는 석탄화력발전을 오는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법안을 이날 통과시켰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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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남아공과는 상당히 비교되는 사회적 토양을 갖고 있다.

유럽연합은 27개 회원국 중 7개국이 이미 탈석탄을 달성했고, 유럽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2017년 이미 석탄발전량을 추월했다. 유럽연합 내 석탄 관련 일자리는 약 24만 개로 전체 일자리의 0.6~0.7%에 불과하다. 유럽연합 통계에 따르면, 유럽인의 92%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지하며, 향후 10년 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에너지 이슈로 청정기술 개발을 꼽고 있다(EUROSTAT, 2019).

유럽은 석탄경제 의존도는 낮은 반면에,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은 높고 고용률과 사회보장제도의 수준 역시 높아서 공정한 전환 실현에 유리한 사회적 토양을 갖추고 있다. 사회적 토양은 곧 사회적 수용성이고 사회적 인식 수준이다. 공정한 전환은 노동자 보호에 대한 이해, 정부에 대한 신뢰, 탄소중립 비전의 공유 등 전 사회 구성원의 이해와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공정한 전환의 가능성을 사회적 인식 수준만으로 가늠할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 인식의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공정한 전환을 둘러싼 동상이몽

탈석탄으로 실직의 위기에 처한 노동자를 돕고 지역경제 회복을 지원하는 공정한 전환의 취지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실제로 전환 대상 지역의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보면 그 방법과 과정에 대해서는 서로 생각이 다르다.

우리 연구소는 지난해 공정한 전환에 대한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충남 당진시와 보령시를 중심으로 발전소 노조, 발전사 관계자, 시청 공무원, 지역 환경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났다. 더불어 우리 국민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탈석탄을 통한 탄소중립 사회 실현이라는 궁극적 방향성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과 이해관계자 그룹 모두가 동의했다. 그러나 탈석탄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석탄발전 폐지 스케줄, 공정한 전환을 위한 재원마련 방안, 정책 수혜자 범위 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

먼저 일반 국민의 경우, 대다수(71.3%)가 석탄발전 폐지를 지지했으며, 과반수(50.1%)는 발전소 설계수명보다 10년 이상 이른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종식하는데 동의했다. 석탄발전 폐지가 지역경제 기반을 무너뜨린다는 부정적 인식(29.7%)보다는 지역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긍정적인 인식(71.3%)이 더 우세했다.

또한 국민 대다수는 성공적인 에너지전환을 위해 공정한 전환 정책이 필요하며(83.7%), 소통과 대화를 통한 이해관계자 간 합의가 필요하다(88%)고 봤다.

그러나 석탄발전 폐지를 통한 에너지전환의 결과에 대해서는 여러 우려도 함께 나타났다. 태양광이 우리나라의 지형적·기후적 여건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대체에너지원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았고(39.5%), 주변 국가의 동참 없이는 석탄발전 폐지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낮게 인식하는 등 탈석탄 정책에 대한 효능감이 낮았다(63.1%). 또한 탈석탄과 탈원전의 동시 추진에 따른 전력공급 안정성 약화(63.3%)와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소비자 부담 가중(41.7%)을 우려했다.

큰사진보기당진석탄화력발전소 당진 석문면에 위치한 당진석탄화력발전소
▲  당진 석문면에 위치한 당진석탄화력발전소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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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석탄발전 폐지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발전소 노조와 사측 관계자, 지방정부, 지역의 환경시민단체들은 다양한 이슈에서 서로 인식을 달리했으며, 일반 국민과도 상당한 인식의 차이가 관찰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이슈는 석탄발전 폐지 스케줄과 공정한 전환의 재원 마련 방안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탈석탄의 스케줄과 관련해서, 발전사와 발전 노조는 재생에너지원과 관련한 기술적·비용적 효율성을 확보할 때까지는 성능개선을 통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감축한다는 전제로 발전소 설계수명까지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봐야 하며, 에너지전환에는 전기요금 인상이 필수적인 만큼 국민들이 요금 인상을 받아들이는 속도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지자체는 지역경제에서 석탄산업이 차지하는 비중, 발전소 폐지예정 시점까지의 시간적 여유, 인구 규모 등 지역별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랐다.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면 지역사회가 두 손 들고 환영할 것 같지만, 보령과 같은 작은 시는 발전사가 내는 지역지원금 감축, 인구유출과 지역경기 하락을 우려했다. 반면, 환경시민단체는 석탄발전을 2030~2040년까지 조기폐지해야 한다는 인식을 일반 국민과 공유했다.

공정한 전환의 재원 마련 방안과 관련해서는 이해당사자 그룹별로 의견이 달랐는데, 발전사 및 발전 노조는 에너지전환의 수혜자가 전 국민이니 전력생산단가 인상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해 이를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지방정부는 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 발전사의 재원을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환경시민단체는 기존의 정책자금으로도 충분하며 오히려 재원에 대한 부담이 에너지전환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우려했다. 한편, 일반 국민들은 전기요금을 인상하기보다 정부부처 및 산하기관의 예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공정한 전환과 관련해서는 사회 구성원 간 상당한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 탈석탄과 공정한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은 충분히 높지만,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의구심과 우려가 혼재해 있었다. 이는 한국의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더 과감한 감축목표 설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준비된 대화’가 필요하다

공정한 전환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그룹과 일반 국민의 인식 차이를 좁히려면 무엇보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는 잘못된 정보가 초래하는 불필요한 논쟁을 최소화해서 대화가 효율적으로 시작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대화가 실효성을 가지도록 대화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가령, 대화에 참여할 이해관계자 범위를 정하고 참여자 그룹별로 대표성과 민주성이 보장되는 대표자 선정 절차를 확립하는 등의 내부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적 대화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셋째는 정부가 탈탄소화된 미래사회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 정책의 일관성을 제고하고 불확실성을 최소화해, 탈석탄을 실현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전력공급 안정성, 일자리 감축, 전기요금 등 탈석탄의 과정과 결과에 관여하는 수많은 요인에 대한 정책 비전을 일관되게 구축해 오해와 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이해관철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다. 대화 참여자 모두가 탈석탄에 대한 높은 사회적 요구를 인정하고, 탈탄소 사회라는 궁극적 지향점을 다 같이 수용할 때 비로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연속기고]
① 전기차 반대하는 노동자에겐 죄가 없다 http://omn.kr/1s6qn
② 유럽과 국제사회의 ‘정의로운 전환’은 어디까지 왔나 http://omn.kr/1samq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빛나라 기후사회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