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2020년 2월 14일 금강모니터링 후기)

2020년 2월 18일 | 금강/하천

새 물이 옛 물을 밀어내면서, 강은 흐른다. 새 물은 곧 그 자리에 있던 옛 물과 같이 되니, 강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하나의 강이지, 동태처럼 몇 등분의 강이 되어 서는 안된다. 태초 이래 한 번도 틀림이 없었던,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다.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고 강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 바로 사대강 사업이다. 작년 10월 4일 방문했던 금강을 지난 2월 14일 흥행영화 <삽질> 김종술 주연배우, 박은영 사무처장과 함께 다시 찾았다.
<세종보 위에서 / 하상이 낮은 우안쪽으로 물이 몰려 흐르고 있다>
세종보는 전면개방된 상태로, 여울과 풀과 모래가 어우러진, 강 본연의 모습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상이 비교적 낮게 만들어진 세종보 우안으로 강물이 치우쳐 흐르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유속이 느린 좌안에는 퇴적물들이 쌓이고 군데군데 물이 고여 썩고 있었다. 부유물들이 떠 있어 눈으로 보기에도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바닥의 퇴적물을 떠보니 하수도와 같은 폐수 유기물을 먹고 사는 실지렁이를 볼 수 있었다. 고인물은, 반드시, 썩고야 만다.
세종보는 2018년 1월 개방 된 뒤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꾸준히 유지관리 비용이 투입되고 있으니, 시설유지에 투입되는 비용으로 철거를 실행하는 것이 새어나가는 세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무용지물이 된 수문 유압실린더 연결 부위는 자갈 등 오염물질이 끼어 있었고, 콘크리트 구조물 곳곳에는 금이 가 있었다. 2018년 모니터링 당시 넓은 모래밭을 형성했던 곳에는 여러 종류의 수생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김종술 배우는 한쪽으로 치우쳐진 강의 흐름 때문에 반복적으로 토사물이 쌓여 버드나무 같은 식물들이 자리 잡았는데, 앞으로 세종보 부근 자연생태 환경을 회복할 때에 큰 어려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시 등장한 실지렁이>
<세종보 좌안은 물의 흐름이 없어 고인채 썩고 있다.>
<갈라진 콘크리트를 급하게 매꿔봤지만, 흐르는 물을 막아서기엔 역부족이다.>
<유압실린더 연결부위에 진흙과 자갈들이 가득차 있다.>
세종보 우안 마리나선착장은 이미 쓸모를 잃고 방치되어 있는지 오래다. 흰두리대교 밑으로 흘러오는 하천은 역행침식으로 벽면의 구조물이 무너진 상태였다. 곳곳에 세워진 말뚝들을 볼 수 있었는데, 물이 가득 차 있을 때 새더러 앉아 쉬라고 굳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이었다. 그러나 새들은 이미 강에 마련된 모래톱 위에서 여유롭게 쉼을 취하고 있었다.
<흉물이 되어버린 마리나선착장>
<역행침식으로 하천 구조물이 전부 주저앉았다.>
공주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수문은 개방되어 있지만, 절반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막혀있었고, 물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한쪽으로 고여있는 썩은 물을 볼 수 있었다. 백제보가 작년 10월 26일부터 관리수위 명목으로 수문을 닫아놓은 상태이기에, 공주보 하류 유구천 합수부의 아름다운 모래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의 흐름도 거의 멈춰있어, 이것이 정말 강인가 싶었다. 수달, 고라니, 외가리, 삵이 와서 밤새워 놀던 모래톱을 이리 쉽게 앗아버렸다. 모래톱을 덮은 뻘에는 다시 뻘조개, 실지렁이들이 찾아올 것이고, 안전하게 쉬어갈 모래섬을 잃은 새들은 떠나갈 것이다.
<부유물이 잔뜩 떠있는 공주보 좌안. 인근에서 버린 쓰레기들이 고인물에 갇혀 있다.>
<이런 물에서는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다.>
<금강 유구천 합수부. 백제보 담수로 유속이 거의 없이 오히려 바람에 의해 역류하는 모양이다.>
<작년 방문에서 보았던 모래사장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김종술 배우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백제보는 수문이 닫혀있는 상태였다. 담수 되어 수량이 많은 상태였는데, 곳곳에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꼼수로 사용했던 도구들을 볼 수 있었다. 수차는 포장된 상태로 감춰져 있었고, 바지선은 물고기 떼죽음을 예상이라도 하는 듯 선착장에 매여있었다. 또 한 가지 의아한 것은 넓게 다듬어진 수변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해 세금을 들여 시설을 유지해야 하는지, 사업을 계획하고 운용하는 사람들의 꿍꿍이가 궁금하다.
<물을 가둔 백제보 수문>
<녹조를 없애겠다고 가져다놓은 수차. 꼼수에 불과하다.>
<물고기 떼죽음 당시에 사용하던 바지선이 그대로 선착장에 매여 있다.>
이번 모니터링을 하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그나마 회복되고 있는 강변에서 만난 야생동물들이다. 회복된 모래톱을 찾아 쉬어가는 새들과, 먹이를 찾아다니는 고라니, 몰래 싸놓고 도망간 녀석들의 배설물들이 금강이 얼마나 자연성을 회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작년에 방문했던 유구천 합수부의 사진을 찾아본다. 수달이 남긴 긴 발자국, 지금은 물에 잠겼다. 우리가 자연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을 경외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존중하는 것, 그것뿐이다. 강을 흐르거나 흐르지 않게 할 것이 아니고,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을 닮아 살면 된다. 흐르는 강물처럼.
<작년 10월 방문했던 유구천 합수부. 위 사진과는 완전 딴판이다. 보라. 흐르는 것이 강이다.>
<유구천 합수부 모래사장에서 발견한 수달의 발자국. 어서 녀석들의 놀이터를 되찾아 주어야 한다.>
 

관련기사 : 봄마다 반복되는 죽음의 행렬, 정부에게 묻습니다 http://bit.ly/2vYl57O

임도훈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