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녹색순례 – 동백꽃 다시 핀다.

2018년 4월 19일 | 기후위기/에너지

*이 글은 김초록 청년체험활동가의 교육참가 보고서 입니다.
 
<2018년 녹색순례 – 동백꽃 다시 핀다.>
 
순례(巡禮)는 한 달 된 청년체험활동가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순례의 주관, 의미, 가치를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교과서에 반장 정도만 기록된 제주4.3은 더욱 비중을 두지 않은 채 순례 길을 떠났다. 단지 앞으로 만날 사람들과의 관계와 육체적으로 있을 고통에 대한 걱정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떠났던 순례는 나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큰 후폭풍을 선사했다. 초반 순례길에 다리를 다쳐 하루에도 수십 번 계속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를 반복했고 모둠원들에게 짐이 된 거 같아 굉장히 미안했다. 제주4.3이 더 이상 교과서 한 장짜리 역사가 아닌 7년, 그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오고 있는 역사라는 것을 순례와 제주는 일깨워줬다. 한때 아주 가볍게 제주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든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제주도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제주가 아니었고 오히려 더 멀어져가는 느낌을 받았다.
 
고찌글라 고찌가게
 
고찌글라 고찌가게
느영 고찌글민 지꺼짐이 열 배여
고찌글라 고찌가게
느영 고찌글민 지꺼짐이 백배여
영도 곱닥헌 날 공기 좋고 사람좋고
느영 나영 고찌 글민
무신 걱정시냐 하영 골민 존다니
▲제주도 민요 고찌글라 고찌가게
 
순례는 4.3 평화공원에서 시작하여 크게 사려니숲길, 거문오름, 동백동산, 우도, 강정마을, 송악산, 한라산, 관덕정까지의 여정이었다. 4월 3일에 시작한 첫째 날은 4.3 평화공원에서 만나 모둠별 또는 개인이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4.3평화공원은 제주4.3의 비극적 역사를 기억하고 재현하여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제주도를 평화와 인권의 섬으로 만들기 위하여 조성됐다. 각령비 앞에서 울부짖으시는 한 할머니는 내가 제주4.3에 대해 처음으로 감정을 느꼈던 모습이었다.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과 먹먹함 그 이상인 감정의 시작이었다.
 
그다음 날 코스는 가장 많이 걷는 날이었는데 평소 잘 걷지 않아 그만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통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다음날 오전 도보만 참가하고 거문오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가장 고통이 심했던 시기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난 시기였다. 이 날 숙소는 선흘리 노인회관이었는데 저녁에 동네 어르신들을 초대해 작은 음악회를 개최했다. 전날에 배운 제주도 민요 고찌글라 고찌가게를 율동에 맞춰 불렀고 이날 볍씨 학교 아이들의 연극도 관람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눈은 지금까지 계속 기억날 정도로 매우 맑고 청량했다. 선흘리 할머니의 장구와 노래 솜씨에 어깰 들썩하며 감상했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호응이 너무 좋으셔서 음악회는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동백동산 4.3 유적지인 도틀굴
 
4일 차 일정은 동백동산에서 시작해 4.3성터를 지나 북촌 너븐숭이로 가는 여정이었다. 동백동산 해설은 이혜영 선생님이 진행해주셨는데 동백동산의 4.3과 자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제주4.3 당시 서민들은 군인과 경찰을 피해 산으로 동굴로 피신했다. 그러다 발각돼 무차별적인 학살이 발생한 곳이 매우 많았는데 도틀굴 역시 발각돼 많은 희생을 당한 곳이다. 도틀굴은 작은 체구의 사람이 힘들게 들어가 겨우 앉을 만한 크기였다. 다음으로 간 북촌리는 제주4.3 당시 5백여 명의 주민이 학살된 제주도에서 가장 피해가 큰 마을이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 또한 북촌리를 배경으로 쓰인 소설이다. 북촌초등학교에서 사람들을 모아 학살했다는 이야기, 남편을 죽이고 임신한 부인까지 사살했다는 이야기가 이날 밤에 본 영화 지슬과 계속 오버랩 되었다

▲500년 동안 자라온 비자림
5일 차는 우도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며칠 동안 이어진 강풍주의보 때문에 배가 뜨지 못해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 때문에 모둠별로 미션이 주어졌고 내가 속한 3모둠는 미션 장소인 비자림과 그리고 성산일출봉, 섭지코지를 가게 되었다. 순례를 가기 전까지 제주도는 관광지라는 인식이 크게 박혀있었다. 하지만 가는 관광지마다 피해지역이 아닌 곳이 없었고 이제는 그곳들을 온전히 관광지로만 소비하지 못하게 돼버렸다. 이날 간 비자림, 섭지코지는 경관이 매우 아름다웠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제주4.3에 대한 감정이 항상 자리 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다음 날은 체력적으로 두 번째 고비였다. 유독 아스팔트 걷는 길이 많이 통증이 더 심해진 듯했다. 과거 서북청년단이 인근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하고 고문했던 서북청년단 주둔지와 우리나라 광산 노동자들이 대거 착취되어 일본군의 격납고로 지어진 성산일충봉 진지동굴을 방문했으며 제주4.3 당시 성산면, 구좌면 인근 마을 주민들이 몰살당한 터진목에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순례는 묵념의 시간이 많았다. 그만큼 우리가 갔던 제주의 모든 곳은 다 제주4.3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숙소는 신산리 마을회관이었는데 신산리와 그 주변 마을은 제주 제2공항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곳이었다. 그곳에 평생을 사시던 분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고 제주는 이미 관광객 포화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짓는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업을 추진하려 하고 있었다. 환경 또한 무차별적으로 파괴될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막걸리 한잔하시며 우리에게 설명해주신 신산리 이장님은 사람들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아무리 말하려 해도 들으려는 마음부터 없고 오히려 편견이 있다는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관심이 그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 강정마을 해군기지 앞 현수막

▲ 알뜨르 비행장
 
7일 차, 순례길에 버스라니, 걷는 길에서 먹었던 간식보다도 버스 안 시간은 더 달았다. 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가시마을이었다. 가시마을 또한 제주4.3 피해 마을이었는데 마을 해설사분을 따라 마을 안 제주4.3의 역사와 흔적이 있는 곳들을 방문했다. 제주4.3 옛 묘역에 있던 시신들을 발굴하여 안장한 현의합장묘와 의귀초등학교 교전에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이 집단 매장되었던 송령이골을 방문했고, 강정마을로 들어와 마을을 돌며 반디 선생님과 멸치 선생님의 해설을 들었다. 강정마을이 해군기지에 얼마나 맞지 않는 곳인지, 해군기지로 인한 막대한 환경파괴와 예산, 시민과 함께하겠다는 말이 과연 진실인지 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날 밤에 있었던 연산호 발표를 보고 해군기지가 일으킨 환경파괴를 더욱 생생하게 느꼈고 다음 날 있을 인간 띠잇기에 사용할 연산호 모양 탈을 조별로 만들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8일 차, 아침 일찍 일어나 기지 정문에서 생명 평화 100배를 올리고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 관계로 강전천 트레킹은 포기하고 점심 전 인간띠잇기에만 참가했다. 전날 만든 연산호 탈을 쓰고 노래를 틀며 기지 앞에서 띠잇기를 하고 바위처럼과 다른 민중노래에 맞춰 율동을 했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그 때 굉장히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이때가 활동가로서의 내 모습을 가장 많이 생각하게 한 때였다. 오후에는 송악산은 올랐는데 생각보다 계단이 너무 많아서 올라간 것을 조금 후회했다. 농작물이 있는 밭 사이에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습은 개인적으로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 해안가 따라 걷는 마지막 날, 동백꽃 다시 핀다.
9일째, 한라산 등반 날이었으나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아 오르지 못했다. 마지막 밤은 회고의 시간을 가졌는데 한 명씩 첫날 그렸던 동백꽃과 문구를 보여주며 순례에 대한 소감을 나눈 시간이 있었다. 이때 굉장히 아쉬운 부분은 동백꽃과 문구의 해석만 말했다는 것이다. 순례에 대해 감상을 말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해산일, 해안가를 따라 관덕정까지 걷고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한 끼로 돼지 두루치기를 먹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느낀 점, 배운 점, 아쉬운 점, 얻은 점이 많았던 이번 순례. 사람이 좋았고 자연이 좋았다. 다리를 다쳐 계속 걱정해 주고 챙겨준 모둠원에게 너무 감사하다. 녹색연합의 활동가로서 녹색인으로서 조언해주신 많은 활동가에게도 감사하다. 제주4.3, 강정마을, 제2공항의 현장에 있는 분들이 생각을 깨우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그리고 제주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