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를 다녀와서………..

2003년 5월 20일 | 회원소식나눔터


2003 생명의 물줄기를 따라서 낙동강 녹색 순례기
기대와 호기심 속에서 이번 녹색순례를 준비하면서 순례 코스인 낙동강 줄기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발원지인 태백의 황지 연못부터 하구인 부산까지 1300리를 거침없이 흐르는 낙동강 줄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1300리나 되는 길을 9일 동안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순례를 마친 지금 돌이켜보면 힘들기도 하고 즐거웠다.
순례의 전 구간을 참여할 수 없어서 좀 아쉽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가장 힘겨운 구간을 참여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걷기 시작한 구간은 순례 닷새째인 낙동강이 본격적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는 구미부터였다.
구미는 1991년 두산전자에서 유출된 페놀로 인하여 오염된 물이 대구 취수장을 통해 대구시민들에게 수돗물로 공급되면서 시민들로 하여금 질병에 시달리게 했던 ‘페놀사태’로 유명한 지역인 만큼 강줄기를 따라 무수히 많은 공장들이 이어져있었다. 마치 강줄기를 따라 병풍을 쳐놓은 듯했다. 그런 공장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2의 페놀사태가 어딘 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걸었을 때 우리는 골재채취가 한창인 왜관을 지나고 있었다. 지방 재정확보사업이라는 명분아래 무자비한 골재채취는 낙동강 하구의 모래를 대구와 금호강에서 쏟아져 내리는 오염 퇴적층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강의 자정작용을 하는 습지나 모래들이 사라지면서 낙동강은 병이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날 (순례 엿새째) 우리들이 도착한곳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서대구 달성습지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금호강의 검은 물줄기가 여과되지 않고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금호강의 검은 물줄기는 낙동강줄기와 섞이지 못하고 한동안 흘러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고 난 후 어느 순간부터 검은 물줄기는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낙동강은 그렇게 말없이 흐르며 많은 오염물질을 받아들이며 더 깊이 병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낙동강의 하구쪽에 가까워질수록 많은 습지들이 발견되었지만 이곳도 골재채취로 인하여 점점 파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습지에 살고 있던 많은 생물체들은 과연 어디로 갈것인가?
다음으로 걸어서 도착한곳은 위천공단 예정부지였다. 이곳은 자연늪지가 형성되어 있는 곳인데, 자연늪지는 생산력과 생명력을 지닌 자연공간으로 오염물질을 침전시켜 정화하고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가 되는 곳이다.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는 곳에 공단이 들어서면서 파괴되는 것이 합리적 경제구조의 개편을 위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인지 환경논란이 한참이라고 한다.
다음날 (순례 이레째) 우리는 낙동강의 대표적 배후습지 경남 창녕의 우포를 찾았다.
우포는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늪, 쪽지벌로 이루어져있는 곳으로 1997년 환경부에 의해 ‘자연생태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고, 1998년 람사협약(습지보호에 관한 국제적 협약)에 등록되어 보호받고 있다. 엄청난 면적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습지에는 많은 새들이 날아와 한가로이 쉬고있었고, 참개구리, 두꺼비, 여러 종의 물고기 등과 같은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한다.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습지파괴의 현장은 있었다. 높이 쌓아 올린 제방으로 인해 습지가 고립되어 가면서 곳곳에서 조금씩 썩어가고 있었다. 과연 무엇을 위한 제방인지? 제방을 저렇게 높이 쌓아야만 하는지? 안타까웠다. 이런 습지가 점점 사라지면서 낙동강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루종일 뚝을 따라 걷다가 저녁이 되어 버스를 타고 우리의 마지막 종착지인 부산의 황령산수련원에 도착했다. 순례의 막바지라 그런지 다들 힘들어했으며 나 또한 발바닥 여기저기에 물집이 잡혀 걷기가 힘겨웠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우리는 내일 마지막으로 걷게 되는 낙동강 하구지역의 넓게 펼쳐진 갯벌에서 발견되는 많은 새들을 연구하시고 보호하기 위해 힘쓰시는 박중록 선생님의 슬라이드를 보고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일이면 철새들의 낙원이라 불리우는 낙동강하구를 걷는구나………………….
순례의 마지막날 드디어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산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도시 한 복판을 걸었다. 자동차들의 소음과 매연, 공장의 매연 등은 얼마 걷지도 않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
아미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갯벌은 정말 장관이었다. 이 갯벌이 주변의 공장들과 도시들 때문에 점점 그 주인을 잃어 가고 있다고 한다. 드넓은 갯벌을 보며 새만금이 생각이 났다. 농지와 공장부지를 만들기 위해 매워지는 새만금의 갯벌처럼 이곳도 가까운 장래에 매워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낙동강의 끝자락을 향해 걸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모습은 어떠할까 상상하며………….. 그러나 그곳에서 강과 바다는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댐처럼 거대한 하구뚝이 낙동강과 바다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하구뚝 위를 걸으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바다는 강을 만나기 위해 뚝을 향해 하염없이 넘실거리고 있었으나 1300리는 흘러온 강물은 병들고 지쳤는지 그냥 고여만 있다. 실제로 바다물을 만나지 못한 낙동강은 점점 썩어가고 있다고 한다. 썩어가는 낙동강 하구의 생태계는 망가져가고 있으며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찾아들던 많은 철새들이 이제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부산시민들의 취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구뚝이 오히려 취수원인 낙동강을 썩어가게 하고 있었으며 동양최대의 철새도래지라는 가치를 잃게 하고 있었다. 낙동강하구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었다. 38선으로 허리가 잘린 우리의 모습이었다. 남과 북이 만나지 못해 서로가 병들고 힘겨워하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낙동강이 살길은 하구뚝을 열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길이듯이 우리가 살길은 녹슬은 철망을 거두고 통일하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흉물스런 하구뚝을 지나 문화제 보호구역인 을숙도를 찾았다. ‘철새 공화국’이 있는 을숙도. 넓게 펼쳐진 갈대 숲들과 갯벌들은 철새들이 쉬어가기에 정말 좋은 땅이었다. 그러나 을숙도 위를 쉴새없이 날아다니는 비행기들과 분뇨 처리시설, 쓰레기 매립장은 우리로 하여금 과연 이곳에 ‘새들이 날아오기나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린 낙동강의 발원지인 태백의 황지 연못에서 떠온 물을 낙동강 하구의 물에 부으며 9일간의 순례를 마쳤다.
강으로부터 고대의 문명들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살아왔듯이 지금도 우린 강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생명의 물줄기인 강물을 따라 걸어오는 순례기간 동안 우리가 본 것은 말없이 흐르는 낙동강과 무심히 강물을 오염시키고, 강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우리들의 잔인한 모습이었다. 이제까지 낙동강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낙동강에게 생명을 주어야 할 것이다.